Theodore Gracyk, 2012, The Philosophy of Art, Polity

Theodore Gracyk
The Philosophy of Art
2012, Polity Press

예술철학은 예술에 대해 논의하는 철학이다. 예술학이 예술의 실무적인 것을 커버하고 예술사가 예술의 역사를 커버한다면 예술철학은 이 둘의 영역에서 메타적으로 예술 배후의 원리를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공간이 바뀌어도 예술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는 존재하는지를 연구한다. 원리적으로 본질을 물어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개념적인 사유와 분석을 대원칙으로 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작품의 의미는 무엇인가? 해석은 무엇이고 번안은 무엇인가? 예술은 표현인가? 의미와 창의력은 어떤 관계인가? 모조품과 진품의 존재론은 무엇인가? 등등의 질문을 논제로 삼아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답변을 연구한다. 예술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여러 사안들을 메타적인 관점에서 논의하고 예술 활동, 작품, 현상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분야인 것이다.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것 같은 주제를 다룬다. 조금은 더 학구적이고 분석적이다.

예술 전시회의 도록에 실린 글은 그저 글이 아니라, 예술의 제반에 걸쳐 있는 예술에 대한 이해 방식을 채택하고 예술 현상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돕기 위한 글인데, 이 글을 쓴 분들이 공부하는 분야가 예술철학이다.

예술철학은 여러 주제에 대해 여러 다른 어프로치로 철학적 퍼즐을 다룬다.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시각예술뿐아니라 구두로 진행되는 나레이션을 할 수도 있고 문자로 된 시를 다루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음악처럼 청각의 정서적 측면에 의해 이루어지는 예술을 하는 작곡가도 있을 것이다. 이는 현시적인 측면이 모든 예술에 존재해서, 이 현시성이 전달하는 의미가 예술 활동이나 예술 작품의 본질이 된다는 말이다. 예술가, 작가, 예술 장르, 예술 감상, 미적 대상, 미적 경험 등으로 범주가 나누어져 있을 수 있게 된다. 예술철학은 예술사와 일정 부분 분리가 되는 분야다. 예술사가 역사적으로 전개되어온 예술의 역사를 다룬다면, 시간에 종속적이다. 그러나 예술철학은 개념적으로 전개되어온 메타 분야이기에 범주적이고 시간 비종속적인 특징이 있을 것이다.

시간에 비종속적이라고 함은 개념적인 것이 어느 시대에서든 어느 나라에서든 공유할 수 있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을 것임을 말한다.

무엇이 예술인가?

이 질문은 그저 예술이 무엇인지 물을 뿐아니라 그로부터 이어져내려온 하나의 원리로 소급가능한 원리가 있는지 물어보고 있다. 하나의 원리는 불가능한데 예술이라는 분야가 이어져내려오면서 확장된 현상적인 분기가 다양해서다. 이각각을 대상으로 해서 비교적 소급이 가능한 원리는 존재한다. 예술이 의미라든지, 표상이라든지, 해석이라든지, 은유라든지와 같은 현상적인 특징을 잡아낸 해석이 그러한 예다.

개념적이고 본질적인 특징은 예술철학 전반의 경향이다. 그런데, 예술을 다루는 철학은 분야가 다양하다. 분석철학적인 분야도 있고, 현상학적인 분야도 있을 수 있다. 예술을 분석하는 철학자의 관심사에 따라 방법론이나 분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단토나 딕키가 하는 분석철학적 분석은 하이데거가 하는 예술분석과 조금 결이 다르다. 분석철학적 분석은 조금 더 개념지향적이고 구조를 분석하는 경향이 강하다면 하이데거처럼 현상학과 해석학적으로 읽히는 경우에는 정신 과학으로서의 예술 공감적인 측면을 더 강하게 이행한다.

그레첵의 The Philosoophy of Art는 분석철학적 전통에서 철학을 바라본다. 인식론에도 능통한 저자라, 개념 구조를 보여주는데 능하고, 쉽게 해설해주는 능력이 있는 저자다. 대학 교재로도 쓰이는데 예술철학을 배우는 입문과정으로서의 전공주제를 체계적으로 해설해주어서 좋다.

커리큘럼에 맞추어 저술된 교재라, 주제 배치는 다른 책과 큰 다른점이 없지만, 세부를 채워가는 소주제가 남다르고 해설도 오리지날하면서도 영감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인도되어 있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는 입문서다.

저자는 인식론으로 학위를 취득할 당시 학과수석을 받은 전문가라고 한다. 인식론의 특성을 보면 개념적인 사유로 지식구조를 논의하는 측면이 강한 분야인데, 그래서 그런지 특별하게 이해가 잘 되게 분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술철학에서도 공헌한 학자로 대단히 좋은 양서를 저술하고 있다.

이책은 저본삼아 현대적인 고전을 섭렵하고 인용된 문헌만 잘 읽어내도 예술에 대해 원리 배후를 바라보는 것의 시작점을 잘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루는 주제의 면면을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의미, 해석, 시각성, 표현, 주의환기, 창의력, 모조품, 진품, 존재론, 진정성, 문화적 기원, 예술에 대한 정의, 미학, 수반, 순수예술 너머, 예술 가치, 미학적 가치, 그외.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으면 더 좋겠지만 어느 부분을 펼쳐 읽든 이해가 잘 되는 책이다. 이책만으로는 물론 지금까지 논의되어온 예술철학의 구체적인 논의는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얕은 서술로 된 책도 아니고, 인용된 문헌을 이해하는데 있어 현존하는 다른 책들에 비해 더 선명하고 구획이 잘 되고 개념적 예시도 잘 된 책이라서 좋다.

커리큘럼이 따른 내용이지만, 전통적인 예술의 표현성에 대한 논의에서, 톨스토이의 정의와 콜링우드의 정의를 보여주고 주의환기 이론에 대한 통념과 다르게 톨스토이의 이론에서 찾아지는 난점을 해소하는 새로운 정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오바도 아니고 대가들의 정의를 그대로 일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의 주도적인 작업을 토대로 해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아래는 이 주제애 대해 내가 공부하면서 했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톨스토이의 표현론에 대한 발췌문을 읽었다. 딕키와 스클라파니가 공동편저한 책에 실린 것. 톨스토이의 저작 전문을 발췌로만 읽어보고 안읽어보았으나 핵심적으로 표현적인 예술이어야 할 때 어떤 기준을 만족해야 되는지 잘 나와있었다. 그의 입론에 근거해서 개요를 써내려본다.

예술은 모두 표현적이다. 무엇을 전달하려고 한다. 이는 직관적으로도 참으로 모든 예술은 표현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전달하지 않는 예술이 있는가? 예술이 표현적이라고 할 때 무엇을 표현하는지가 중심 주제가 된다. 이에 대해 우선

(1) 예술가의 자기표현으로서의 정서
(2) 감상자의 수용으로서의 정서

이 두가지 조건으로 나누어 살펴본다면 보다 선명한 논증이 가능해질 것이다.

톨스토이는 (1)과 (2)에 대해 따로 떨어트려놓기보다 두 조건 사이의 상호관계에 주목했다. 예술작품이 표현이라면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 그는 (1)의 작업을 통해 (2)를 이끌어내는 정서의 전이에 주목한다. 그럼으로써 예술의 정의와 예술가의 창작에 대한 관점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예술은

(1) 자기표현이다
(2) 쾌의 대상이기보다 정서의 전달이다
(3) 인류간의 화합이며
(4) 공감적이어야 한다
(5) 개인들의 참살이에 기여해야 한다

이들 조건을 충족해야 된다고 한다.

그는 예술이 표현임을 인정한다. 특히나 예술을 표현하는 사람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에 대한 책무도 강조한다. 표현적으로 사려 깊어야 하고 공감적이어야 한다. 공감을 일으키려면 인류애에 기반해야 하고 개인들 각자의 참살이에 지평을 제공해야 한다. 외적인 화려함이나 순간의 쾌보다는 내적인 가치를 따르고 인생에서 쉽게 잊게 되는 것을 고취시켜주어야 한다. 이는 자기로부터 분리되어 남들과 동화되는 것으로서의 표현물, 커뮤니케이션과 정서적 전이의 목적을 위해 예술은 존재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예술가는 마땅히 이들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하나의 도덕적 완전자로서의 사명을 가져야 마땅하다.

서두의 시작이 인상 깊다. “…우리는 감각적 쾌로서의 예술에 대해 사고하는 것을 그쳐야 할 뿐아니라, 인간 삶의 조건으로서의 예술을 사유해야 한다.”

그의 이념적 취지는 도덕적인 기준을 만족하는 바람직한 예술상의 제시였다. 그의 사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나치정권의 영화와 사진의 선전매체로서의 선동적이고 일탈적 예술이나, 삶의 자국들로 남게되는 포르노 같은 문란함을 방조하는 예술에 대해 그는 심중을 굳혔고 한 사람의 그리스도교인으로서 보다 더 높은 가치의 실현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이러한 예는 극단적이지만 실재로 톨스토이가 권고하는 도덕적 가치는 도덕적 기준의 해이가 아니었나한다.

도덕적인 기준과 미적인 기준은 둘다 중요하지만 보다 포괄적이 되려면 둘사이의 관점에서 보다 더 자유롭고 독립적인 조건이 필요해보인다. 그의 기준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도덕적 권고로서 읽히게 되는 것이 적용상의 난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보다 더 복잡다단한 포괄성을 지닌 기준을 세우려면 3. 단에서 언급한 (1)에서 (5)까지의 기준들을 살펴보는게 필요하다.

(1) 자기 표현이라는 기준이 참이어야 한다면 그러하지 않은 예술도 있다는 점에서 포괄적이지 않다.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 나오는 아들 황제의 캐릭터나 막시무스 장군의 캐릭터는 감독의 자기표현인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가능하고 실재로도 그렇듯이 예술은 항상 자기표현은 아니다. 다만 암묵적인 작가의 그때마다 새롭게 찾아지는 관심사나 개념적인 상상력으로 창조해낸 대리체험의 영웅담이다. 이에 의하면 (2)의 기준은 참이 될 수 있는데 정서의 전달이라는 면에서 우리는 분명히 글라디에이터를 보고 압도적인 스케일이나 주인공의 복수가 성공하면 감각적인 환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미디가 가미된 오락영화는 분명히 예술로서 인정받는 작품이지만, (3)처럼 인류간의 화합보다는 한정된 공동체내에서만 인정받을 가능성도 있으며 한 공동체에서 유머로서 인정받는 내용이 다른 공동체에서는 경박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톨스토이는 도덕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만큼, 윗단 9.에서 말한 것이 포괄적이지는 않더라도 그가 보고 느낀 국면들에서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는 정서의 전달이라는 대전제 하에 예술 창작과 예술 수용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으므로 예술이라는 것의 기본 정신인 무엇에 관한 것이냐는 것, 그리고 해석이 필함되는 것이라는 기준에는 적합한 기준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1)에서 (5) 모두 특정한 상황에서는 참이 될 수 있으며 톨스토이의 관점에서는 잘 들어맞기도한다.

예술이 공감적이고 참살이에 기여해야 한다면 정서의 전이에 의해 가능하다. 예술은 가치있는 감정을 전달해야 되는데 가치있음의 조건은 도덕적이어야 하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전제가 되어야 전이가 긍정적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형제애를 가져야 하고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톨스토이 시대에 유행하던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예술로서 전이될만한 것들은 미적 조건뿐아니라 도덕적 조건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의도하는 참살이라는 것은 예컨데 분열이 된 계급간의 대립이나 거리를 좁히는 것, 돌이킬 수 없지만 감정에 충실한 작중인물들의 내러티브로부터 삶에 대한 통찰을 얻어내고자 함이다. 이에 의하면 고난을 받는 작품속 인물은 즐거움의 대상은 아니지만 정서의 전이를 이끌어내는 기준을 만족한다. 공통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인류애를 증진시키고 개인의 참살이에 기여한다. 이는 감각적, 향략적 즐거움은 아니지만 인류애를 달성했다는 깨달음은 된다고 그는 보았다.

정서의 전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무엇이든 전이가 되면 안되겠으나, 코미디나 여타 비이념적인 즐거움을 주는 작품은 어떠한지 톨스토이에게 물을 수 있다. 그는 기준 설정에 있어서 특정적인 것을 설명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복잡다단한 창작 과정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를 유래하기도 했다. 작품이 이념적으로 옳을 때에는 예술의 지위를 얻을 수 있지만, 이에 충족되지 않는 경우에는 예술이 될 수 없다. 이는 너무 협소한 정의인 것이다. 아무리 등장인물이 욕을 하고 웃음을 준다고 해서 그것이 예술이 아니라는 것은 일반적인 예술 평가와는 조금 다르다. 도덕적 기준과 미적 기준을 완화해서 이런 예술계의 모든 현상을 포괄하여야 한다. 도덕적 기준에 조금 미달하더라도 정서의 전이는 긍정적일 수 있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도덕적 기준은 인간의 기본적인 선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엘리트주의적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이를 톨스토이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비포괄성은 도덕적이냐 미적이냐의 기준 설정이 빠지게 되는 함정과도 같다.

톨스토이의 제시였던 정서 전이 기준인

(1) 예술은 작가가 느낀 것을 감상자에게 전달하는 자기표현이다

를 조금 수정해서

(2) 예술은 특정적으로 환기된 감정을 감상자에게 전달하는 활동이다

라고 하면 창작의 제한보다는 감상자의 기호에 더 주안점을 둘 수 있어서 좋다고 알려져 있고, (자기표현이 삭제됨으로써) 창작 과정을 포괄할 가능성이 커지며 똑같은 감정이 아닌 환기된 감정이므로 예술적 표현의 고정성도 비껴갈 수 있다. 이 단에서 말한 것은 이 글 전단계에서 언급한 것에 대한 충분한 해명없이 이루어졌으나 일단 끄적여놔보겠다.


예술철학에 대해 잘 모르는 초심자도 학구적인 소양만 있다면, 메타적으로 논의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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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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