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사회문화적 시야와 상상력이 이끌어가는 정련된 언어의 이야기들 – “이문열 중단편집 상/하”

이문열 작가는 내가 글쓰기를 연마할때 참고한 작가이기도 해서 흠모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같은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학교에서 은근히 언급하던 소설이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극화의 주인공이 우리 단신 동아리 (?) 의 일원이기도 해서 그런지 심각성은 잊게 되고 예능적인 것과 연관되어 기억이 남게 되는 해피한 과정이었다. 물론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의 텔레비전에서 해주던 방송들은 유쾌함도 있었으나 대부분 사람 살이의 도덕과 관련된 것이었고 저 소설만 대충 접해본 나로서는 무언가 사람들에게 읽으면 남는게 있는 작가라는 추측을 했다.

그후로 중학생이 되면서 초등학생 시절에 동화책 쉰페이지 정도의 간추린 삼국지를 졸업하고 삼국연의를 모본으로 삼은 이문열 평역 삼국지를 보게 되었는데 이때의 인상이 매우 좋았다. 고풍스러운 문장력에 삼국지 각 장면을 직접 대만까지 가면서 번역한 수고로움도 그러려니와 그동안 호기심이 있었던 이 작가의 작품을 접해본 감격도 그러했고, 서서히 동화책 일변도에서 탈피해도 된다는 연령의 진행이 왠지 기분좋은 국가경영의 이야기를 본 것 같아 나도 도서평론가들처럼 삼국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이 작가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즐겁게 느끼고 있었다. 물론 삼국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한 것은 2020년이 지나서였긴 하다.

그러던 중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양아치 아님) 독서를 소일거리로 하던 시절에 다시 나의 소중한 영웅처럼 첫인상이 박힌 이문열 작가를 다시 상기했다. 그당시 하도 피폐해진 체험을 하고 난국을 경험해도 말못하고 지나가야 했던 체현이라 적절한 타이밍에 기억 리콜을 하는게 매우 버겁기도 했는데 이 작가는 안잊혀지고 기억에 남아 독서에 올인하던 그 시절에 거의 첫구입 대상으로 한게 이 작가의 “사람의 아들”이었다. 나름대로 기독교 신앙자였다가 무신론으로 넘어오게 된, 그러나 유신론을 세계관의 하나로 인정하는 신념을 구체화하고 싶던 시절이라, 문학가 이문열은 종교 문제에 대해 어떻게 그리는지가 궁금했다. 읽어보니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니 이야기가 조금 넓게 퍼트려진 것이 스케일이 큰 작품을 기획하였던 포부도 느껴지고 마무리가 다 오밀조밀한 것은 아니더라도 종교의 현실성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살펴보려고 하는 작가의 기획이 돋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읽으면 사람들에게 남는게 있게 하는 작가 특유의 극화는 소재가 무엇인지에 따라 전혀다른 느낌을 준다. 이번에 읽은 이문열 중단편집 상/하에서도 그러한데 “나자레를 아십니까”와 같은 첫 소설에서는 비정한 분위기가 감도는 무대 설정에 종교와 복지에 대한 의문 부호가 따라오는 서술로, 종교가 사람이 만들어가는 활동이고, 복지 시설과 같은 천국에서도 들여다보면 무언가 비리가 있다는 항간의 대화소재를 눈앞에 펼쳐지게 그려낸 비판 정신이 읽혔다. 대부분의 사람 살이는 도덕과 관련된 것이고, 무거운 주제는 순문학의 진중함과 더불어 무겁게 다가오지만, 이문열 작가의 소설이 이를 목표로 할때는 비정한 분위기는 느껴질 지언정 마음에 탁 내려앉는 언친 기분이 안들고 시선이 이행되는 속도가 매우 빨라서 신기했다. 그러한 가운에 이어지는 소재 선정과 그 소재에 딱 맞는 유려한 표현 전개가 일품이다 “아 그래서 내가 글쓰기 배울때 이분을 흠모했구나ㅡ”하는 생각이 들면서 시종일관 유쾌하게 읽은 책이다.

상권은 종교 이야기, 석기시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성장 스토리와 권력을 틀어쥐는 아이들의 부폐하는 과정, 상업적인 의도로 제공하는 개인정보와 개인의 목숨의 풍자,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훈련 모습과 ROTC 장교의 시각으로 그려내는 군대라는 공동체의 모습, 고아원이라는 공동체를 졸업한 사람이 다시 찾아간 고아원이 간판을 바꾼 유치원에서의 소회, 그외 공동체에서 규율이 되는 문화와 이에 적응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들,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도 하고 비극적이지만 희극적 결말로 마무리되어 즐거운 풍자성을 느끼는 설정들, 즉 상권에서는 공동체와 개인 사이의 갈등과 내면의식이 주된 주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권은 기와 예에 대한 미학적 논의로부터 시작하여 작가 자신이 기와 예를 부리는 어른스러운 (?) 관계 설정의 소설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그 전격 전개 전에 고대 그리스 한 폴리스에서 있었던 시민 봉기와 정부 당국의 충돌이 사소한 시비로부터 시작되어 우연적인 사건이 필연적이 되는 과정을 아주 실감나는 극화로 그려낸 소설이 있는데 이역시도 국가 제체에 대한 반감이나 시민들의 군중심리, 여기에 오바하는 권력 유지의 욕구를 가진 지도층의 무리수, 상인이나 시민계층, 예술인들의 감정적 부화뇌동 등의 과정이 겹쳐지는 흥미진진한 전개로부터 한 나라의 체제가 허물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이라 좋았다. 그이후의 단편들은 앞서 말한 어른스러운 (?) 관계적 유희가 주된 내용이라 부끄러워서 그냥 건성으로 휙휙 넘어갔는데 여튼 이문열 작가님도 작품의 스펙트럼이 넓구나 하고 느꼈었던 하권이었다.

신선한 것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풍부한 언어적 표현과 사람들이 좀처럼 쉽게 접하지 못하는 극화 소재의 채택이 매우 탁월하다는 것이다. “나자레를 아십니까”부터도 우리가 기독교하면 가지는 성스러운 공간이라는 의미보다 마을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지만 수장으로서 무책임하기도 한 사람이 이끄는 종교 단체에 대한 우려감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결말을 갑자기 비트는 그의 기술이 비극적이지만 묘한 여운이 남았다.

“새하곡”에서도 흔히 군대하면 가지는 위압적인 느낌이나 엄격한 위계관계로 꽉 막힌듯한 느낌을 완화하고 거기서도 사람사는 공동체이고, 사건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인간미를 잃지 않는 ROTC 장교와 부하 장병들의 성격들이 맞물려 이루어지는 일화가 아주 흥미진진해서 좋았다.

“들소”에서도 역사학적으로는 단일한 의미로 이해되어온 석기시대 인물과 사회상을 풍부한 상상력과 그당시를 복원해서 묘사하는 선명하고도 타고난 필력으로 서사를 부여하는데 시작부분에서 사냥에 서투르지만 조각에 능한 주인공의 정체성의 고민을 생생하게 그려내어 보여줄때의 의미심장한 첫인상이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역시나 명작이었다. 스포일러가 될 듯하여 내용은 생략하자면 공동체의 기준을 비껴가는 사람들과 권력을 얻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쩌면 한국 사회의 카르텔이나 입시 등의 문제와 연관시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를 남들도 다 다루어본 직접적인 현대 시대의 묘사로 풀어낸게 아니라, 석기시대의 일로 치환해서 풀어내는 그의 역량이 매우 대단했다. 소재적으로 처음 접하는 흥미를 돋워주고 적나라한 현대 시대의 언어가 아닌 당대의 잘 짜여진 각본대로 흘러가는 묘사가 일품이었다.

다른 소설들도 재미있는데 일단 생략하겠다. 여튼 이번 중단편집 상/하를 읽으면서 다시 이문열 작가의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제는 일반화된 진보와 보수의 대결국면이나 홍위병 발언으로 비판을 받아 작가 생명까지 위협받던 그의 글은 사회비판일때 사실 그렇게 자극적인 것은 아니다. 요즘은 심지어 진보를 표방하던 사람들도 귀족노조 비판하듯이 젊은이들의 헬조선론을 비판하기도 하던데 이문열 작가는 아주 오바는 안한다는 의미에서 안되보였다. 시민 봉기를 다룬 “칼레파 타 칼라”에서도 시민과 정부를 모두 우발적인 대립으로 그려낸다. 아무래도 1980년대에 흥성한 작가이다보니 보수층으로 분류되었던 것 같은데 꼴통보수는 아닌듯하다. 암튼 그렇게 보였다.

여튼 이문열 작가의 데뷔시절부터 1990년대초반까지의 중단편집을 읽고 싶으시다면, 헌책방에서라도 구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 이문열 중단편집 상/하다.

두서없이 정리했다. 이문열 작가에 대한 논문찾아보고 보강하려다가 무기반에서 쓴다. 길게는 썼는데 내용이 반복되는 리뷰라 송구스럽다는 말씀 전하면서 이번에 참여한 가치독서 참여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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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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