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에 대한 정의는 우선적으로 보면 누군가의 우상이다. 누군가 동경의 대상으로 삼은 존재가 아이돌이다. 아이돌이라고 지칭될 수 있는 존재들은 다수지만, 예능계로 제한하면 그 의미는 좁혀진다. 아이돌 평론가 기타가와 마사히로는 다음과 같이 아이돌을 정의한다.
“아이돌이라는 일군의 직종은 고도경제성장기에 경제력이 상승한 젊은층의 인기를 끈,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에서 활약하던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이 정의에서 중요한 대목들이 여럿 발견된다. “아이돌은 직종” “칼라 텔레비전의 보급” “고도경제성장” “젊은 층의 경제력 상승” “매력적인 인물들”과 같은 부분들이 서로의 연관하에 매우 중요한 논제가 되기도 한다.
우선 이들 부분들에 대한 통시적인 이해를 해보도록 하자. 시대적인 흐름에 의해 이해될 수 있다. 전후 일본이 피폐했던 사정은 경이로운 경제성장에 의해 국민들의 경제력이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거품경제가 활발하던 시절에, 칼라 텔레비전이 등장하여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공연 시청이 가능해지면서, 젊은층이 더 쉽게 예능을 접하게 된다. 이들이 동경하는 매력적인 외모와 패션으로 무장한 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들이 등장한다. 아이돌은 이들 여러 요소들이 결합된 하나의 집합체로 탄생하였다는 것이 위의 정의에 집약되어 있다. 예능의 요소인 가무에 능하고, 또는 최소한도로나마 가능성을 보이고, 외모가 출중하고, 싹싹하고, 젊은층의 동경의 대상이 된 소년소녀들이 아이돌이라는 것이다.
1970년대의 감성을 담은 아기자기한 코디를 하고 나온 현대식 쇼와시대 아이돌들은 나름의 특색을 갖추고 음악성도 갖춘, 때로는 음악성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어도, 또다른 장점으로 인기를 얻고 가창력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팬덤을 형성하였다. 팬덤의 주요 구성원은 10대, 20대의 젊은층이었다. 이시기에 10대를 보낸 세대들은 포스터나 음반, 잡지 등을 직접 구입하는 경제적 주체였기도 했으므로, 아이돌을 트레이닝하고 데뷔시킨 소속사의 주요 고객이 되어 아이돌 문화를 아이돌 문화뿐아닌 아이돌 산업으로 발전시켜온 주요 주체가 되었다.
특히 어린 시절 감성적으로 동경할 수 있는 대상들인 아이돌에 대한 장래 희망을 가진 어린이들도 늘어나서, 몸소 아이돌이 되고 싶어하는 아이돌들이 증가한다. 그당시 시도되온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중학생 나이의 참가자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소속사의 집중 육성 정책에 의해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명멸하였고 지금은 50대와 60대가 되었어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기도 하는 중견 예능인이 되었다.
1970년대 초에 데뷔하여 한 시대를 풍비한 하나노 쮸산 토리오 (꽃의 중3 트리오) 의 일원이라고 불리던 솔로 활동 가수, 모리 마사코, 사쿠라다 준코, 야마구치 모모에들은 지금도 전설로 불리우며 일본 예능계의 역사를 새로 쓴 아이돌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스타탄죠에서 입상한 전력으로 가요계를 데뷔해서 성공한 경우로, 스타탄죠의 아이돌 산실이라는 의미가 더해지는 존재들이다.
스타탄죠가 지닌 건전한 경쟁 시스템, 소속사의 선택, 어린이가 발탁되면 가족적인 분위기로 육성한다는 방침들과 같은 요소들이 대히트를 쳐서 몇년 동안 새로운 아이돌이 발탁, 육성되는 산실이 되기도 했다. 이로부터 한국에도 존재하는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의 활약과 같은 시대가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이어진다. 1980년대의 아이콘이자 스타인 마츠다 세이코와 양대산맥을 이루던 나카모리 아키나도 스타탄죠 출신이고 보면 스타탄죠라는 프로그램이 지닌 그 당시 아이돌계 위상은 대단했다고 회자된다. (세이코는 선뮤직에 데모테이프를 보내서 발탁되었다)
스타탄죠의 권위는 그당시 맹위를 떨치던 지무쇼와 방송국의 신경전도 잘 알려져 있다. 스타탄죠가 방송되던 시간대에 타방송국에 복수출연이 도의적으로 꺼려지던 시절이었어서 자사의 탈렌트들을 스타탄죠에 출연시키지말라는 나베프로덕션의 방침에 의해 결국 방송국이 이기고, 이득을 얻는다는 전설적인 일화가 유명하다.
또하나의 특별한 가요 프로그램으로 자베스토텐이 있었다. 자베스토텐은 TBS 계열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으로, 여러 방법으로 시청자의 표를 받아 산정해서 순위를 매기고 10위권내의 가수들을 불러서 공연을 보여주던 방식의 프로그램이었다. 이 가요 프로그램의 순위는 오리콘 차트와도 같은 권위를 보여주었는데 자베스토텐에서 1위를 하면 그것이 인기의 척도가 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청취가 되므로 다시 인기 상승이 되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만점은 9999점으로 역대 만점을 받은 가수는 두 명 정도로 압축된다.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의 의의
가요 프로그램의 이러한 인기에 아이돌 산업의 중흥은 1950년대 후반부터 진행되어온 신삼종신기의 인기가 가져온 여건도 있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로만 향유되어온 저렴한 비용의 시공간의 제약을 비교적 없앤 라디오 방송에서 더 나아가, 텔레비전, 세탁기, 냉장고로 불리우는 삼종의 신기에 텔레비전이 있었다는 사실은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인해 성장하고 발전한 아이돌 산업의 특징을 말해주는 지표이며 이로부터 기타가와의 아이돌 정의에 포함된 구절들이 해설이 된다.
물론 스타탄죠와 자베스토텐 이외에도 경쟁 방송사들의 가요 프로그램은 많이 있었다.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아이돌 출신의 예능인과 활동을 접은 아이돌 출신의 예능인들이 출연했던 이들 가요 프로그램의 공연은 여전히 큰 경제적 산업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전의 방송 출연 영상을 추려내어 여러장의 미디어로 발매하고 데뷔 몇십주년 기념으로 뮤직 비디오와 프로모션 비디오를 여러장의 미디어로 발매한다든지, 베스트 음반을 꾸준히 발매하는 식이다. 지금 40대에서 60대 사이의 소비자들은 추억이 담긴 청년기의 아이돌 미디어를 소비하는데 열정적이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사회인 오타쿠들을 대상으로 한 이 산업적인 패턴은 쇼와시대라는 일본인들의 향수를 활성화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해지기도 한다.
시대가 흘러가 1990년대에 들어서면 아이돌의 빙하기라고 지칭되는 현상도 있었는데 쇼와시대의 정통파 아이돌로 불리우는 유형은 아니지만, 여러 아이디어가 실험되고 정착되면서 현대적인 아이돌의 활약도 있게 되게 시대가 바뀌게 된다. 모닝구무스메, 아무로 나미에, AKB48과 강튼 아이돌 또는 아이돌 그룹은 후발 세대로서 선배였던 쇼와시대 정통파 아이돌과는 조금 사뭇 다른 인상을 남긴다.
이렇게 가요 프로그램에서 활약하였던 젊은 나이의 아이돌들은 또한 활동사의 전반에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기도 하고 성우로 발탁되거나 잡지모델, 광고출연 등으로 활발한 예능계 활도을 주도한다. 이들 활약을 체계적으로 감독하고 훈련시키는 체제는 오디션 프로그램이기도 했지만, 일단 데뷔를 준비하고 히트를 시키는 것은 소속사(게노오 지무쇼)가 맡아서 하는 작업이다. 다시 말해 아이돌을 키워낸 또하나의 축은 소속사 시스템인데 이를 일본어로 지무쇼 다이케이라고 하는 현상(소속사 체제)이 중요한 논제가 된다. 다음편은 지무쇼 다이케이에 대해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