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좋은 것입니다. 감사함과 긍정도 좋은 것이구요. 그런데 실재적으로는 반대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대화나눌때는 칭찬보다는 일상적인 일과를 묻거나 지적하는 것이 일상적인 대화 내용 같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자기가 잘하는 것에 대해 평균적이라고 느끼거나 따로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죠. 이때 누군가 정말로 칭찬을 하면 기분이 순간적으로 좋아져서 안내비치시던 기쁨이 느껴지죠.
칭찬이 좋은 것은 상대가 잘하는 것을 말해줌으로써 보람도 느끼게 하고 사귈때 배려심도 느끼게 한다는 것인데요.
문젯거리는 자기개발에서 말하는 나르시시스트의 특징과 “칭찬함” “친해지기전에는 말많다가 친해지면 침묵함” “과장되게 칭찬함”과 같은 성격 판단의 기준이 되는 술어가 칭찬함 일반에 적용되기 일반이라, 그냥 잘해서 칭찬한 것도 달리 보게 되는 것이 심리적 판단의 한 실기라서 같습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의 성격 형성 과정은 각자가 다를 것이구요. 오래전의 나르시시스트 성격 해설에서 잘 언급되던 “어릴적에 애정을 못받고 결핍적으로 성장했다”라는 조건이 요즘은 생략되기도 합니다. 사실, 성격 판단은 개인차가 있고 생각하기 나름이라, 술어에 대한 임의적 판단에 열려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어릴적에 애정을 못받고 결핍적으로 성장해서 어른이 되서 성격적 결함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실재 상황에서 보면 남들은 참아온 본능을 발현해서 단칼에 내쳐도 결핍적인 성향의 어떤 분들은 구명을 일관되게 이어가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성장해올때 저평가되어 고생한 것이 학문적인 것으로 성장이 된 경우, 남들이 잘하는 것에 대한 긍정의 마인드로 정말 잘하는 것에 대해 칭찬하고, 자책하는 경우에도 칭찬을 하는데요. 이 경우에도 나르시시스트의 성격 특성과 일부가 술어적으로 겹치면, 어떤 평가적 상황이거나 규범적으로 다들 느끼고만 지나가는 조건이 겹칠때, 저 사람 왜 칭찬을 하지? 하지마!처럼도 됩니다.
그래서 상담학에서 추천하는 감사일기를 써라, 칭찬을 하라, 긍정적으로 살아라라는 것이 측은한 처우처럼도 되네요. 하지 않아도 되는데 새삼스럽게 시킨다는 의미가 되니까요.
전 감사일기와 칭찬,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규칙은 누구나 지켜도 되는 것으로 봅니다. 이게 이해되는 경우가 있어서, 칭찬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하고,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것은 “부모님이 자기들끼리 좋아서 애를 낳았는데 어른이 되서도 그러신다”와 같은 조언도 하시죠. 즉 일반화된 가르침이 속박조건도 되서 진정성이 있는 말이 오해될때 해줄 수 있는 조치입니다.
상담학에서 도입하는 자기개발의 가르침도 같아서, 기준에 따라 다른데, 예외를 언급하면 지켜야할 기준이 아니게 되니, 이를 생략하거나, 자율에 맡기어 실천하게 하는 것인데, 이 경우에도 술어나 표현이 절대화되어 이후에 와전되기도 하네요. 이것이 성격 테스트에 대한 반감으로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전 칭찬을 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나르시시스트처럼 보이는 분들도 살펴보면 문제없다는 판단을 하시는 전문가분들도 많으신 이유네요. 이것도 나르시시스트라는 지칭어가 지닌 심각하고 비신뢰적이고 실망적인 대상이 주제가 되서 그렇지, 칭찬 자체는 용기를 주는 인간관계의 실천이네요.
때로는 상담받으러 오신 분들에게는 감사일기와 같은 어린이에게 부과되는 과제를 시킨다고 하는 인식에 도달하면 사람의 수준차이라는 것이 무의식에서 일으켜지기에 이것도 윤리적으로 지배적인 문화가 되면 루저담론이 반대급부로 일어나기도 하는 것 같애요. 그래서 그냥 선의로 칭찬했는데 우연하게 그사람이 인생을 살아온게 루저의 흙길이었다…라면 고생을 여러 사람이 하게 되죠.
그러니 전 한국에서 情 문화가 대표적이었을때의 방송을 보고 시청자들이 보이는 반응이 왜 그 방송에 친화적으로 되는지도 관련 논제라고 생각합니다. 칭찬도 정서적인 안정감의 방법이고 情 문화에 기반한 방송도 그렇고, 방송이라는 것 자체가 윤리적인 문화를 이끌어가는 기제니까요.
칭찬은 좋은 것이다라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