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주의가 신체적인 것을 생물학적 조건이라고 하는 이유

체험주의는 과학을 인정하면서도 존재 구명(rescue)에 대한 긍정을 하는 철학이다. 과학에서 연구하는 신체적인 것과 생물학적 조건이 인간종의 경험 내용을 구성한다고 전제한다. 이 과학적인 것의 의미는 생물학적이라고 하는데, 이는 뇌의 독립된 특성과, 상호작용을 하도록 진화된 것을 조건화한 것이다.

생물학적인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럽다. 초견상 이렇게 느끼신다면 체험주의를 배우시는 것을 아주 잘하신 결정이다. 왜 기호에 유폐된 체험자를 가리킬때도 생물학적이라고 하는가?

이는 특별한 상황을 고려한 선택적 특수 용법이다. 예를 들면, 체험주의가 존재 구명을 할때 과학의 필요성이 요청되는 상황이 특별하다. 인생의 성장기에 학대를 받아온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피폐해진 상태로 살아와야 했다. 이 경우에는 생물학적인 것을 배제하고 본다면 사회적이라고 할때, 신체적인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는 인과가 되기도 한다. 어떤 외국의 저널리스트가 “당신은 병자가 아니다”라고 한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학자들이 있는 이유도, 신체적이거나 생물학적인 것이 전제가 되어 명시되지 않았을때의 의미 누수 현상을 미리 막아두고 의미 전달을 하는 메타포다. 치유의 관점에서 생물학적인 지지를 해준다는 것이고, 이는 건전하지 않은 도덕의 생물학적인 것도 현상적으로 보여주는 개념어다.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도덕을 지킨 사람이든 배덕자든, 그 기반은 신체적인 것이고, 이를 강하게 말해야 하는 급박한 순간의 묘사를 담담하게 하기 위해 축약적인 용어로 생물학적, 상호작용적, 사회적 존재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흉흉해진 요즘 세상에서는 생물학적이라는 말의 의미가 너무나도 강렬하기에 이에 대한 거부감도 드는데, 체험주의가 전전두엽의 특징을 공감을 조율하는 능력의 기반이라는 것도 같은 의미로 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체험주의를 바라보는 분들에게 요청만 하는게 아니라 체험주의가 구명하는 대상이 된 분들이 공감적 능력을 잃지 않고 버텨낸 것이라는 은유이기도 하다. 철학적으로 한 표현에 결부된 의미는 다양해서 이를 표현하기 위해, 인간종들은 생물학적, 상호작용적, 사회적 층위에서 여러 은유를 체험한다고도 말하는 이유다.

인간종은 분석철학의 용어인데, 호모 사피엔스를 번역한 말이다. 원어에서는 생각하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어서 거부감이 없는데, 인간종은 종이라는 말이 한글로 쓰일때 노예라는 뉘앙스가 있어서 이것도 거부감의 하나가 된다. 이 경우에도 분석철학계에서 쓰이게 된 근원이 한자 병용일때이고, 특별히 의미를 이해하는 담백함의 상징이라 그냥 학자분들은 쓰신다. 체험주의의 생물학적 논의의 근원이 위와 같으니, 이해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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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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