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창조과학을 지지하지도 않고 신앙을 지지하지도 않는 무신론자지만 종교 자체의 사회적 순기능을 인정하기에 이런 논의가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많은 경우 성경에 대한 신학적 논의에서 성경을 역사적, 문학적, 도덕적 텍스트로 읽기에, 이를 시대적인 텍스트로 보고 이를 신앙의 관점에서 과학과 거리감을 좁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는 있는 것 같애요. 유전자조작과 같이 생명과학을 전공할때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스도교 핵심가치와 다르다는 데서 과학적 방법론을 구정하는 것은 욕심일 수는 있죠. 하나의 정체성 혼돈이 일어날때 이 정체성의 결과가 그리스도교와 자기의 연구분야와 상충한다면 조금 의미가 달라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를 그분들만 따르는게 아닐뿐더러 신앙자분들의 능동적인 관점에서 그리스도교의 넓은 계층에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로 접근법이 될 것 같애요. 물론 저는 창조과학이 과학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고 (공룡과 인간이 공존했다고 할때, 종교도 아니고 과학도 아니게 되니 종교와 과학 양면에 끼이죠) 이를 안해야 한다는 것을 믿지만, 세계관의 하나로 존중할 수는 있습니다.
진화생물학이 보여주는 종교 부정의 현상에 대해 예를 들면 진화심리학이 아담에 대해 무엇을 논의할까와 같은 문제 설정이나 실험에서 가설적인 것이 인정되는 것을 우려하시는 것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마치 AI가 개발될때 누구나 그외적인 변용을 우려하는 것과 같은 우려 같애요. 생명과학의 예를 들자면 정관수술을 했다라는데 대한 의구심이 종교에도 침투한다? 그러니 창조과학도 같은 급의 시도로 되지 않을지의 우려 같습니다. 이를 성경의 말씀이 훼손된다고 하시는 것 같애요.
그러니 유신진화론에 대해서도 신앙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해야 하고, 과학적인 세계관으로 신앙을 옹호한다는 발상에 우려가 있게 되는데요. 정치적인 것으로 번질만한 주제라, 반대의견도 존재하네요.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창조에 주목해보면 오래전의 문학적, 역사적 텍스트들이 기존의 기록을 참고해서 기술했기에 현재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현상이 성경적이라 믿는 것에 대해,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대홍수와 대비되는 현상을 상정해서 신앙심을 형성시켜주는 것을 잘 해나간다면 창조과학도 세계관이 될 것입니다. 생명체의 대멸종과 같은 과학에서의 연구와 그 유사점을 찾아서 성경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초심이죠. 현대화된 방식으로 사고하면서 읽으면 된다는 것이죠. 꼭 과학으로 접근한다고 해서 성경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고, 양심을 지켜준다는 것이네요. 꼭 유신진화론이 아니더라도 빅뱅과 천지창조 당시의 성경에서의 묘사에서 공통점을 찾기도 하는데 대해 신앙자분들도 주목하시고 좋아하시는데, 굳이 대홍수에 대해 생명체들이 멸종했던 과학의 연구와 공통점을 찾아 신앙과 과학의 거리감을 좁히는 것은 꼭 잘못이 아니다, 우선 성경의 설득력을 높히려는 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능하죠. 어떤 경우 무신론적인 과학하신 분들이 이를 반대하기에 그분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신앙에 대한 보급을 막는데 일조한다는데서 생물학하지 않는 분들이 이에 대해 격하게 반대하시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급진적 진화론자에 대한 언급이 이런 우려십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신 가설에 근거함, 실험하지 않음과 같은 말씀은 도덕판단이십니다. 진화된 아담의 예도 그래서 이해가 되죠. 아담에게 진화된 존재라고 비유하는 것과 진화에 대한 가설적 비유가 가능한 것이 진화론의 한 갈래라, 이를 과학적 사실보다는 도덕성의 관점에서 반대하자는 제안이시죠. 이 도덕판단은 이런 의미 같습니다. 굳이 성경과 상충되는 체제에 대해 그 체제의 내부로 들어가 논리를 세우는 것은 응용의 관점에서 (이공계통에 대한 언급의 이유 같애요) 종교의 가치도 훼손하고 과학의 가치도 훼손하지 않을까?라는 도덕적 직관이시고 옳은 전제 같습니다. 진화에 대해 생각난 반론은 원시바다와 흡사한 용액을 만들어 전기충격을 가하니 분자합성이 되더라…와 같은 반론도 있던데요. 이 경우에 도덕판단이 중요하게 되는 것은 실험에서의 진정성이 주된 반대 근거이고, 창조과학도 같아지는데 대한 우려 같애요. 뇌과학계에서도 사이코패스의 뇌 활성화와 선량한 뇌과학자들의 뇌 활성화가 같은 정도의 분포더라…라고 해도 이를 반대하는게 가능해지니까요. 그러니 초심을 잃고 과학과 같은 비도덕성이 신앙에 스며들지 않을까?와 같은 말씀이십니다.
그래서 창조과학이나 유신진화론을 일부러 언급하지 않는 생명과학하신 과학도분들도 있으시고 이를 딱히 정체성과 충돌한다고 하는 말씀 자체에 대해 그 말씀이 기반한 체제로 들어가서 반론을 안해도 된다고 하는 생명과학 과학도분들도 계시네요. 세포가 분열하고 진화해가는데 대한 통찰을 꼭 몇천년의 사건이라고 보기보다 그자체로 하나님의 섭리로 두면 굳이 진화론의 역사를 언급안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네요. 그래서 그런지, 창조과학을 비판하는 분들은 창조과학은 생물학자는 잘 참여를 안하네…와 같은 인식도 있군요. 이 경우 지구 역사가 수천년이든 수십억년이든 상관없이 생명체를 자연의 섭리로 보고, 이 자연을 창조주의 작품으로 본다고 하는 해설을 하면 꼭 유신진화론이 아니더라도 신앙과 과학이 같이 가는게 가능하다는 실천 유형도 있습니다.
그러하기는 해도 꼭 개인의 선택에 대해 도덕적으로 보는 것은 생물학을 하시는 신앙자분들을 낙오하게 하기도 하는 경우가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게 진정성있게 하는 것인데, 인간세상의 모든 현상이 과학이든 신앙이든 변질되는게 일반이라, 문제가 있어 보이게 되네요.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인데 이게 직관적으로 옳아도 신앙자분들이 접하는 현상은 정말로 변화하고 다양한 것이라 불충분해도, 개별 사례로 들어가면 각자가 전제로 하는 부분이 서로 대립적인 속성이 내재해 있어서, 그냥 세계관의 하나로 존중하는게 최선이고, 도드라지게 무언가 선을 넘지 않으면 존중하는 것도 방법 같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