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
강수미 지음
현실문화연구 펴냄
2009.06.12
미술작품은 감상자 외부의 사물이다. 외부의 사물로서 존재하는 사물의 물질적인 측면을 감상자는 경험적인 대상으로 경험한다. 감상자의 의식 외부의 대상이므로 독립적인 실체이고, 감상이 시작되면 대상의 표면에 오감이 향하는 원리다. 오랜 옛날 미술작품이 현실의 충실한 모방이었던 시절에는 별다른 지식이나 의식적인 인지 없이도 어떤 미술작품인지 아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모습을 그린 작품은 표면 그대로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전달해주는 것이 기능이었다. 그러나 현대미술로 넘어오면 사정은 확 달라진다. 어떤 형태를 그린지조차 애매하게 붓질을 대충한 듯한 얽혀있는 색채미거나, 아예 단색으로 캔버스 전체를 칠했거나, 배경 설명도 없이 자모를 뒤섞은 작품까지… 이러한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려면, 더 이상 무관심적인 관조는 통하지 않게 되었고 전문성을 지닌 평론가의 평론을 봐야 겨우 이해가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어 한탄을 한다.
평론가분들도 훈련받은 미술계의 일원일테니 다들 한평론하시는데, 내가 볼때 미학자이신 강수미 동덕여대 교수님께서 발표하신 원고들은 특별히 좋은 평론인 것 같다. 강수미 교수님은 예술학 석사까지 마치시고 미학 박사를 발터벤야민 연구로 받으신 교수님이자 평론가시다. 평론 활동을 대학시절부터 하셨고 전시기획도 하시고 저서로 상도 받으신 이력이 있으시다. 이 이력은 장점이 되는 이유가 있다. 미학만 하신 분들은 예술계에 정통하셔도 현장에서 있게 되는 작업을 직접 해본적이 없으시니, 평론을 하실때 예술가와 괴리된 기분이 들게 평론을 하실때가 있다. 때로는 현학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론이 실무보다 우위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강수미 교수님은 미술 현장에서 작업하신 분이시라 평론을 쓰실때의 원고가 매우 공감적이고 애정적인 미술론이 되는 것 같아 매력적이시고, 체계적이고 정련된 가운데서 느껴지는 서술의 느낌이 매우 완전하신 실력가시라는 생각을 하게 하신다.
감상자가 느낄 수 있는 미적 경험은 작품의 표면 그 이상의 무엇이다. 표면을 오감으로 훑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그러한데 그 표면을 넘어서서 내부의 심층을 느낄 수 있으려면 우선 작가의 의도를 잘 섭렵할 줄 알아야 하고 한 작품의 삶의 자리나 역사적인 배경도 알아야 하고 미학개념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미술감상의 인지적인 측면을 전달하는 것은 강수미 교수님이 제일 잘하시는게 아닌가 할 정도로 매우 감동적이다. 서술로서 감동을 하게 하는 기교가 아니라, 미술작품이 처한 자리와 위상을 정확하게 전제하시면서도 미술작품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고, 탐미적인 것을 다루실때도 의연하고 정련된 필치가 돋보인다. 규칙위반에 대해서도 과하지 않게 이해를 도우시는 솜씨가 탁월하셔서 감탄이 나온다. 보통 두꺼운 평론집은 조금 하루에 다 읽기가 애매하고 힘든데 강수미 교수님의 평론집은 다음 섹션에 어떤 내용이 나올까 기대가 만발하는 그런 명저다.
“요컨데 가시성의 표면읽기가 곧 비가시성의 심층 드러내기다. 또는 지각은 단순한 감각활동이 아니라 인식활동이며, 그런 지각의 활동은 형이상학 차원에서 관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파편적 현상을 관찰하고 의미를 읽어내는, 구체적이고 수행적인 입장에서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 장의 작가뿐만이 아니라 모르긴 몰라도 모든 예술가는 가시적, 비가시적 세상을 놀이터 혹은 싸움터 삼아, 베냐민이 주장한 것과 같은 의미의 지각행위를 호흡하듯이 자연스럽게 지속하는 이다. 바라보고, 읽고, 생각하고, 구상(具象)하고, 표현하는 삭제 활동 속에서 우리가 보는 미술작품들은 산출된다. 그러나 우리 또한 그 가시적 표면을 바로 작가가 걸어온 과정과 비슷하게 밟아야 하지 않을까? 아마 그 발걸음이 작품의 감상일 것이고, 세계라는 현상의 표면을 지각하는 한 방편일 것이다.”
“나는 미술이 궁극적으로 우리 삶을 보다 좋고, 보다 의미 깊으며, 보다 살 만한 차원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하기를 바라고, 거기에 오늘날 현대미술의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글에 잘 드러났는지, 혹은 독자가 그것을 잘 읽어줄지는 미지수지만, 5장의 글들뿐아니라 앞선 장의 글들을 쓰는 순간순간에도 놓치지 않으려 한 것은 ‘이 미술이 우리의 사회적 삶에 무엇이며, 어떻게 기능을 하는가?’하는 시각과 문제 의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품이 주는 감각적 쾌락에 적당히 순응했으며, 때로는 작품으로부터 특별한 각성이 없어도 글을 써 젖혔음을 고백해야겠다. 그런 비평태도야말로 가장 비(非)비평적이며, 비정치적이라 해도 변명할 말이 없다. 다만 적어도 여기 5장에 속한 글들은 상당히 공공성을 의식하면서, 또 상당히 앞서 말한 미술의 사회적 기능을 고려하면서 썼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나의 이 의식과 고려가 작가들의 작품에 원천을 두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글쓰기가 사회적 기능의 미술로서 잠재력을 지닌 작품들에서 내 몸과 마음이 배우고 성장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미술은 그렇게 사회적으로 역할을 하고 그 역할을 다했을 때 자기 존재 의미를 사회로부터 부여 받으며, 비평이란 그러한 미술을 언어화하여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예컨데 그 주제는 사적인 동시에 대중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 비판적이면서, 스펙터클을 해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조직하는 것 같기도 한 식으로 여러 차원과 성격을 뒤섞은 것이었다. 젊은 작가들은 그런 주제를 공간, 시간, 인간 행위, 테크놀로지를 결합하고 재구성하는 뉴폼, 뉴미디어, 뉴장르(new form, new media, new genre)로 구현했다. 반(反)미학적 스타일과 예술행위를 통해 기성 미술의 한계를 깨트리면서 그 외현을 넓혀갔던 것이다. 당시 유학을 중단하고 돌아온 학생, 주류에 편입하기 힘든 / 저항하는 작업을 하는 무명작가 등, 생물학적으로나 경력 면에서 일천하고 이전 어느 세대에서도 발견하지 못햇던 문화적 취향과 태도를 가진 이 작가들을 한국 미술계는 ‘신세대’ 또는 ‘yKa(young Korean artist)’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들의 출현과 활동은 곧이어 미술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 지지를 보내거나 그것이 향후 대세임을 간파한 비평ㅡ큐레이터의 영역, 그리고 나중에는 국공립 기관까지 나서서 젊은 미술의 에너지를 각종 형식으로 담아냈다. 이것이 앞서 언급한 ‘대안적 미술활동의 만개’ 현상이다.”
“창작: 실험적 미술에서 시장 정향적 미술로”
“예술과 세계에 대한 자기 문제의식에 앞서, 자기 창작과 표현 의지에 앞서, 이곳의 어리고 채 준비 안 된 작가 지망생들 내면에 이미 ‘시장의 법칙’이,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서의 작품’이 미술의 유일한 원리이자 정체로 고착된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비평이론: 해체에서 부재로”
“이처럼 창작 영역이 위축된 데는 분명 미술비평 또는 미술이론의 책임이 없지 않다. 아니 최신 유행과 강력한 상업 메커니즘 앞에서 허약한 내용의 비평과 이론, 또는 엄밀한 의미의 ‘비평’과 ‘이론’이 부재하면서 오히려 ‘자본에 압도된 한국 현대미술의 오늘’이 제동장치 없이 가속화했는지도 모른다. 앞서 논한 지난 1990년대 말 한국 미술계 젊은 작가들의 실험과 도전은 꽤 많은 부분 영미권의 신미술사학과 신미술비평, 문화연구, 프랑스와 독일의 후기구조주의 사유와 매체이론을 이곳 지식의 장으로 수용하면서, 그 수용된 이론이 미술 창작의 장과 결합하면서 나름의 의미 지평을 확보한 과정이다. 특히 세기말을 풍미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각종 담론은 그 이론적 수용의 정합성은 둘째치더라도 당시 여기 작가들과 ‘미술(Art)’이라는 영역의 정체성 변화에 큰 전인차 구실을 했다.”
“나는 미술가들이 ‘시스템 편입자’가 아니라 ‘시스템 유발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를테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예술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니 팔릴 수 있는 미술을 해야한다’는 논리를 내면화한 이가 아니라 ‘개인의 미적 자유가 곧 공동체적 삶의 자유로 승화될 수 있는 사회체제를 추동하는’ 예술가가 되자는 것이다.”
책 앞부분에서 해설한 미술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이후에 펼쳐져 있는 평론들에서 잘 견지되고 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나 논리를 위한 논리가 아니라, 여기에 살아숨쉬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문제의식을 예술현장의 경험자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애정적인 시각으로 펼쳐낸다. 매우 난해한 현대 미술 특히 한국이 창조해낸 미술작품을 매우 선명하고 중층적으로 보여주는 역작이다. 이책도 강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