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도 수능 에세이 주제로 아인 랜드에 대한 해석을 요구하기도 하던데 난 이와 별도로 삶의 난국을 해결하던 시절에 추천받아 아인 랜드를 일부 읽은적이 있다. 우선 읽은게 논픽션적인 글을 쓰는 그녀의 교본과, “Philosophy who needs it”이라는 철학 보급 강연적인 책이다. 다 읽지는 않았다. 그녀의 철학이 대표적이 된게 객관주의 인식론(objectivist epistemology)인데 다 파악은 안해봤지만 그당시 내 판별력이 최적이라 예측이 가능했다.
그녀의 저작은 셀 수 없이 많다. 상당수의 저작이 철학 보급을 의도하고 있고 철학하는 동기를 분명히 하는 것이 많다. 그녀의 철학에 대한 잘 알려진 해석은 두가지다. 하나는 공리주의와 같은 기존의 철학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서 존재의 권리를 추구하는데 인식을 같이 하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훈교식의 이기심을 달리 구현한 자본주의 옹호론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는 그녀가 함축적인 글쓰기를 할 때 논증 형태적으로 니체나 프랑스 포스트모던 논의를 읽는 형태와 유사해서인데, 특히 이기심의 미덕을 논의하는 저서에서는 이기심이라는 개념의 의미가 존재의 성격을 강하게 지칭하는 구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행간으로 함축하다보면 이기심을 적극 권장하는 것처럼 보이고, 이는 니체나 포스트모던 철학이 은어적 논증을 할 때 보여지는 의미 연쇄를 연상시켜서다. 그러나 그녀는 구명적인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주의 윤리의 가치 기준, 다시 말해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인간의 생명이다. 인간으로서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것이 그 기준인 것이다. 이성이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수단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존재의 생명에 적절한 것은 선이고, 합리적인 존재의 생명을 부정하거나 반대하거나 파괴하는 것은 악이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구심점은 인간의 생명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사회적 존재인 한, 타인의 규정에 의해 정의되고 전해진다. 이는 이타주의를 위해 살아가는 당위성을 지칭하고 이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모종의 이타주의가 존재의 부담을 주는 경우가 있다. 부담을 넘어서서, 희생의 상황에서도 이타적이어야 한다면, 그는 그의 생명을 지킬 수가 없다. 합리적인 존재의 생명은 선이라는 것은 이타적인 것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모종의 이타주의가 사람을 제약하는 것을 대항할 수 있게 하는 규정이다. 이기심에 이타주의적으로 대응한다면 그 사람은 타인종속적이 되는데 이는 이타주의가 타인에게 위해를 받아도 선하게 행동해야 하는 의미이고, 이기적으로 존재를 해하는 타인은 자유롭게 이기심을 시전한다면 그것에 대항하는 논리는 존재의 생명 보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타주의만으로는 불가능한 존재의 지속이라는 것인데 이는 니체와 조금 다르다. 니체는 귀족주의적으로 차별을 전제한다면 아인 랜드는 공존을 전제한다. 그녀는 개인주의를 이에 대한 실천 지침으로 본다.
“개인주의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정신에 의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개인주의자는 자신을 타인에게 희생시키지도 않고 타인을 자신에게 희생시키지도 않는다. 개인주의자는 사람들을 거래자로서 다루지 약탈자로서 다루지 않는다. 또 개인주의자는 생산자로서 사람을 다루지 아틸라 같은 침략자로서 사람을 다루지 않는다.”
그녀가 객관주의라는 그녀의 철학에서 추구하는 것이 이것이다. 자신을 위해 합리성을 갖도록 노력하되 타인을 약탈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개인의 영역에서 존재를 발전시키는게 철학이라는 의미다. 현실에서 부딪히는 것들은 권리의 충돌이기도 하고 존재에게 가해지는 압박이자 협박도 있다. 그러한 상황을 막고 견지해나갈 수 있는 윤리는 권리의 문제인데 이를 그녀는 저서에서 일관되게 논구하고 있다.
“권리는 개인이 사회적 맥락 안에서 누리는 행동의 자유를 규정하고 허용하는 도덕적 원칙이다. 세상에는 단 하나의 근본적 권리가 있다(다른 모든 권리들은 이 권리의 결과이다). 바로 인간이 자신의 생명에 대해 갖는 권리이다. 생명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스스로 하는 행동의 한 과정이다. 그러기에 생명에 대한 권리는 자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행위를 할 권리를 의미한다. 이것은 곧 합리적인 존재가 자신이 생명을 지탱하고, 확장하고, 즐기기 위해 필요한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이에 대해 철학의 논의가 발생하는 동기에 대해서도 다루는 글이 저서에 나온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이기심인데, 이기심의 실천이 철학적 논의를 일으키게 된다면 이기심이 미덕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실재 희생을 일으키는 철학적 논의에 대해 그 근원을 해명함으로써 옳은 유형의 철학을 제시하는 희생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게 전부는 아닌데 한국에서 지성적인 표적 살인이라는 말도 나오듯이 그녀 철학의 한 관점을 보여주는 예로 인용해본다.
“실제로 따지고 보면 전혀 논쟁이 아닌데도, 토론에서 기선을 제압하고 반대자가 논의되지도 않은 생각에 동의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전개하는 그런 유형의 논쟁이 있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함과 동시에 논리를 우회하는 한 방법이다. (중략)
이 논쟁 방법은 ‘인신공격 오류’와 닮은 점이 있고 또 심리학적으로 인신공격 오류와 같은 뿌리에서 생겨났지만 근본적인 의미는 다르다, ‘인신공격 오류’는 어떤 주장을 제안한 사람의 성격을 비난함으로써 그 사람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증명하려는 시도이다. 예를 들면 ‘X후보는 부도덕하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은 거짓이다.'”
이는 토론이라는 것이 지닌 한 측면, 즉 지성인이 이행할 수 있는 부덕의 최선의 수단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있고 논의를 하는 동기조차도 공격할 수 있을 때 유효한 관찰이다.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마녀사냥에서도 이러한 방법이 힘을 얻는데, 잘 알려진 공직자나 강연자들에 대한 여론이 생기면 그것이 미리 제단하는 것이 압박이 되서 사람의 인성을 규정하고 이것이 자살로까지 이어질 때 이에 대한 전개가 논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이 경우 낙인찍힌 사람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고, 보여지는 현상으로만 판단하면 그 전제가 되는 협박이나 압박과 같이 그 원인 규명이 안이루어진다는데서 심각성을 아인 랜드는 인식한 것 같다. 이는 학문하는 사람들뿐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무엇 같다. 사회 생활에서 부딪히는 일들은 조직에서라면 조직의 위계와 일사분란한 처리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경우 합리적인 조정은 불가능해지고 개인의 안위는 사회 조직이라는 명분에 의해 유린된다. 해직의 경고나 학교에서의 왕따 문제 또한 일의 전개 과정에서 기획되는 면이 강하다. 만일 합리적인 싹이 보인다면? 전자는 기업적이고 후자는 교수법적인데, 이 둘다 아인 랜드가 권리적으로 보호하려는 대상을 협박한다. 토론이 부재했다고 하는 일각의 관점은 무시된다. 이 기반에서 보면 토론이라는 것이 지닌 한 측면 즉 지성인이 이행할 수 있는 부덕의 최선의 수단이라는 인식이 판단의 기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예방하고 잘 견지하는 방식으로 철학이 가능하다면 철학은 어떠한 윤리에 기반해야 되는지를 논구한 것이다.
이로부터 그녀는 (1) 최선의 윤리는 생명 존중이다 (2) 그럼에도 누구도 도울 수 없을 때 사회 구성원에게 합리를 실천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3) 이타주의의 파급을 막는 한 방식으로 개인주의를 주목하자 (4) 이기심이 필요할 때 망설이게 하지 말자 (5) 그러나 자기 보호로서의 이기심은 필요하고 평소부터 합리적이고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이론화되어야 한다 (6) 토론 능력과 의견 조정은 객관적인 인식에서 가능하다 (7) 철학은 이래서 필요하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기조만 써봤다. 아인 랜드의 저서를 본격적으로 읽으면 구체적으로 개념 채택이 가능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