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해석에 대한 방법론 상념

역사적 예수를 배울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문헌 탐구다. 모든 역사적 사실은 고고학적 자료와 문헌에 나타나있는 사료에 의해 탐구될 수 있다. 문헌 사료 중에서 역시나 제일 널리 쓰이는 기본 텍스트가 성경이다. 성경은 기독교 신앙자들이라면 누구나 믿고 따르는 문헌으로 보이지만, 기독교 신앙을 가졌어도 신학적으로 재능이 있는 분들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다. 문자 그대로의 무오성을 믿는 것을 근본주의라고 하는데 근본주의는 비신앙적 자유주의의 극단적인 형태만큼이나 나쁘다고 보는 신학자들도 많다. 예컨데 여호수와나 사사기 같은데서 보이는 시대 변화에 있어서의 모순점들에 대해 근본주의자들은 약간의 무리한 해석으로 변명하거나 별다른 해석을 못 내놓은다면, 신학적으로 재능있는 분들은 이 점을 모순으로 인정하면서도 기반적으로 전혀 문제가 안되는 해석적인 방법론을 따른다.

이는 내가 오래전에 기반을 세우려고 했던 것, 일종의 전승적 문학 작품으로 읽는 것과 유사한 방법론인데, 성경을 전승에 의한 고대의 기록으로 보고, 고대의 신앙적 발전 과정에서 높은 정도의 추상화를 성취해낸 민족이 제시한 신을 믿는 삶의 한 기록으로 보는 것이다. 삶의 기록이고 고대의 기록이므로 현시대의 과학적 성과에 비추어보면 모순이 발견되지만, 신앙적 발전과정에서 다른 민족의 유사한 전승들이 신들의 실책이나 희극 같은 결말로 전개했다면 성경은 신의 자애로움과 구원의 메시지를 보다 높은 단계에서 논해본 유례없는 시도로서, 신앙자들의 혜안을 모아 해석을 하는 해석의 대상으로서의 텍스트라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선명하게 논의하는 신학자의 글을 몇편 읽어보았는데 그의 입장은 (1) 기독교는 자연과학과 구분되는 면이 강하다는 것과 (2) 자연과학의 무신론과는 다르고, 창조과학 또한 사이비 과학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3) 고고학적 성과가 합리적이라면 그것이 성경과 배치될 때 무리하게 성경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보기보다 합리적인 시각에서 이해와 해석의 틀을 짜는 것이 성경 연구의 방법론이 된다는 견지에서 참이 되는 것 같다.

난 과학도적인 성향이기는 해도 역사적 예수에서 채택되어야 할 기본 태도가 저 신학자가 제시한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연과학이 필요하다면 고고학적 연구 같이 실증적이어야 할 때 연대 측정을 하거나 여러 다른 방편을 위한 것 정도는 필요하다고 보고 있고 그러나 자연과학의 일방적 제안을 무리하게 기준삼지 않으면서도, 성경이라는 텍스트를 해석하는데 있어 신앙과 말씀의 권위를 해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하게 이해하는 방법으로 그 전제가 되는게 방법론적으로 따를 수 있는 것들이 이미 신학계에서도 논의되어온다는 사실을 믿는다.

구체적으로 해당 성경 말씀을 예로 들으면서 고고학적인 발견과 융합시키는 태도가 중요한데 이는 역사적 예수 탐구에 필요한 문헌으로 소개된 정경, 비정경, 그외 문서들에 대해서도 적용될만한 학문적 태도로 생각한다.

요약하느라 구체적인 연구를 보여주는 것이 없으면 조금 의구심이 들만한 특성이 있기는 한데 일단 노트정리 선에서 그친다.

이 신학자가 비판한 것 중에서는 성경의 권위인지 설교자의 권위인지 불분명한 기반에서 단지 신앙자들에게 믿으라고 하는 형태는 나쁘다는 것으로 그렇다고 왜곡하는 것은 나쁘지만, 기독교 신앙에 맞는 학문 체계를 선별해서 따르면서 비신앙자들에게도 합리적인 시각으로 기독교를 바라보게 할 건전한 방법론에 대해 눈을 트이게 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이 있다.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인용해서 말하면 내 요약표현에서 느껴지는 의구심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듯한 애매한 표현이 이해되겠지만 일단 공부가 진척된 이후로 밀어둔다.

이분이 말씀하신 해석으로 지금 생각난 것은 이스라엘이 왕국으로 된 시점에서 대제국이 아니라는 고고학적 연구 결과가 있는데 이는 산간왕국에 불과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이는 신앙적 관점에서 성경말씀과 어긋나지만 일단 이해의 준거는 될 수 있다고 하더라. 이 연구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규모가 대략 시사점을 받으면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기존의 시각인 60만~2백만에 가까운 인구가 탈출했다는 것은 모순점이라고 하는 결론이 가능하게 된다. 2백만명이 탈출 행렬을 이으면 고대의 작은 길에서는 125km가 넘는 행렬이 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외적으로 지층에 흔적이 없다는 것, 그당시 이집트 인구가 크게 잡아 2백만 정도 된다고 볼 때 이집트에 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탈출했다는 것은 말이 안됨을 인정하면서, 고고학적 연구들을 존중하는 시사점을 얻어서 이 시사점을 근거로 계산해보면 규모는 작지만 5000에서 6000명 정도가 탈출한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면서 역사적 사실임을 더 입증가능하게 된다는 예시를 보이더라. 규모는 작은 민족이지만 앞서 언급한 높은 정도의 추상화가 가능한 신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었다 하더라. 성경에서 보여지는 사랑과 관용의 문화도 이런 관점에서 선의 표현이다. 이 견지에서 볼 때 기독교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지만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안드러내놓고도 설명되는 해설을 하시고 계셨다. 즉 성경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능동적으로 세계와 조화롭게 하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고 기독교를 믿고 살아간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신다.

요약하자면 현시대적인 학문적 통찰로 볼 때 성경의 무오성을 배제하더라도 역사적으로 실증적인 태도로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의 의미를 신앙적으로 강화시키는 방안을 실재로 보여주고 있더라.

공부 진척이 더 되어야 내 스스로 이 방법론에 입각한 의견 제시가 가능하다. 난 기독교 신앙자는 더 이상 아니지만 기독교 정신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 역사적 예수를 배우면서 비판점은 비판하고 긍정할 점을 긍정하려고 했는데 이분의 방법론이 시사점을 주고 있어서 특기해본다

청색공책
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모바일 앱 개인 개발자입니다. 프로그래밍을 즐기고, 책을 읽습니다. 부지런히 보고 거리를 쏘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보 공유 정신을 실천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1 thought on “성경말씀 해석에 대한 방법론 상념

  1. 제가 2, 3세때부터 경험해온 삶의 난국이 블로그 글에서도 영향을 주어 누군가 제 컴퓨터를 침입해서 감시하다가 제 컴퓨터에서 신호를 보내 글을 무단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면 제 글을 반박하지 못할때, 저의 글에서 느껴지는 도덕성을 훼손하기 위해, “~더라”라는 어미처리를 한듯 보이게 하려고 글을 다 바꾸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하는 경우가 없는 것일때 더 그러하네요.

    이것이 그냥 제 컴퓨터 해킹해서 글만 바꾸는게 아니라, 프록시 연결, 라우터 해킹, 더블버퍼 악용, 제가 올린 모든 컨텐츠를 바꾸어 놓는 것과 연합되어 있는 기술입니다.

    전체를 다 되돌릴 수가 없기에, 공지를 드립니다. 제 글에서 발견되는 도덕적이지 않은 측면은 이렇게 저의 도덕성을 해하려고 해온 2, 3세때부터 이어진 타인의 알력임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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