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의 나타남/나타내보임 개념에 대해

사르트르의 이론 지향적인 저서는 분량도 길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개념적인 판단 조건이 그가 설명하려는 현상에 딱 들어맞는 그러면서도 단순화된 개념에 기반해서 믿음이 간다. 마음과 신체의 문제, 즉 의식과 인식 주체의 문제를 환원적 일변도도 아니고, 비환원적인 일변도도 아닌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칸트식의 “초월성”에 의해서인데, 사르트르는 훗설의 본질직관을 받아들여, 자아에 대한 초월적인 논증의 가능성을 이어받았다. 그가 실현한 “나타남/나타내보임”은 현상학의 논제인 현상 그 자체를 논의하면서도, 현상만을 바라볼 때 있게 되는 주관보다 객관의 상태를 이상적으로 보는 것을 극복하고 있다.

즉 내적인 것으로 현전하는 의식도 나타남이고, 외적으로 표명하는 것도 나타남이다. 인식 주체가 자신의 표명을 드러내면 그것은 나타내보임인데, 둘다 나타남이라는 본질로서 현상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능동적 주체로서 나타내보인다는 것은 존재와 무에서 말하듯이 프루스트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직설법적인 조건에서, 의미 연쇄의 사용 방식을 의미한다. 그에게 이어서 나타내보임이란 의미 연쇄를 나타나게 하는 특정 방식을 의미한다. 과학적으로 전기검류계의 반응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인 힘이 드러나듯이, 현상학적으로 나타내보이는 작용을 통해 우리는 인식 주체의 내적인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나타내보이지 않으면 그것은 무(neant)다. 그러나 나타남을 의식하는 주체에게는 여전히 무엇을 향해 있는 나타남이다. 이는 외적인 것으로서 비실재하는 대상을 향해 있다. 이를 가리켜 그는 아날로공 개념을 제안했다. 아날로공은 비실재지만, 인식 주체에게는 나타나는 무엇이다. 상관항이 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주관적이고, 상상력의 한 기제라고 그는 보았다. 이는 예술이 가능한 토대이기도 하다.

이 “나타남/나타내보임”의 구분은 “현출”이라고도 번역되는데 난 전자가 후자보다 더 나은 해석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르트르의 철학을 실존이 아닌 현존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나타남보다는 즉 주관성보다는 나타내보임의 객관성에 주목한 나머지, 사르트르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주체의 자유에 대해 규제적이 될 것 같다. 즉 책임을 강조하면서 나타내보임을 해석하게 되면, “현출”이라는 것이 지닌 “지금 그러하게 나타내보임”이라는 것의 의미가 결과적으로 그럴듯하면 된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는 “인간은 누구나 어릴적에는 착해. 그것이 특별해? 너의 현재 모습이나 생각하시지”와 같은 반응을 받은 사람에게 규제적인 의미가 되기 쉽다. 그러나 나타남과 나타내보임으로 현출을 심화시킨다면, 외적인 것으로서의 판단자가 인식 주체의 나타남을 판단하는 것 또한 나타내보임이므로, 그 역시도 객관성의 폭력을 저지르지 않도록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현출”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면, 인식 주체의 자유는 제한된다. 마치도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 판단자가 할 때는 부당한 거짓을 말해도 애매하게 의미가 전달되서 부당성이 드러나지 않고 혐의가 씌워지지만 판단 대상이 하면 비현실이라고 격하시키면 그만인 것이다.

사르트르는 직설화법이라는 언급을 해서 사르트르 학계에서 논의되는 논제이기도 한데 그가 에세이 작업을 통해서도 옹호하듯이, 카뮈의 이방인 주인공을 옹호하는듯 해석자도 하는 것은 표현적 한계게 부딪힌다. 나 같이 제도권이 아닌 사람은 부담이 덜 하지만, 교수님들이 이방인 주인공을 옹호한다면 그 비난이 얼마나 쎄겠는가? 하지만 그가 관심가진 극한 상황에 던져진 실존의 기투는 보장되어야 하고, 이를 직설화법으로 논구했던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다만, 프루스트를 언급하듯이, 그도 모든 자유를 허용한 것은 아닌데, 이는 프루스트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은 대체적으로 어릴적에는 누구나 가지게 되는 것이고, 이게 타인의 이해 관계, 심지어는 가까웠던 사람끼리의 이해 관계에 의해 금지당해서 특정 표현만 강요된 경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설화법으로 자유를 누리라는 것을 제안한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프루스트의 표현적 능력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의 공허한 내면을 채우려고 하는 것으로 자신의 즉자를 채우고, 대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지킨다면, 나타남이 현상이고 나타내보임이 주관일 때, 자아의 초월성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직설화법이라고 하고 있고, 과학적 힘을 논의할 때 자신감을 가지라는 의미도 된다.

그의 의미 연쇄 개념도 나타남/나타내보임의 개념과 친연적인 개념이다. 이 역시도 실존의 표명의 자유에서 자유가 향유 될 수 있는 구체적인 나타내보임을 정식화한 것이다.

이게 존재와 무 서언 1절, 2절을 읽고 파악한 것으로, 1차 문헌과 2차 문헌, 논문을 읽고 한 생각이다.

내 평소의 문체보다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는데 이해하시려는 태도가 전제되어 있으시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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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청색공책
청색공책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이자 정보 제공자입니다. 어린 시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을 이겨내고 활로를 찾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탐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관심분야가 특징이구요. 도서관 사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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