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티는 분석철학을 한 사람으로 “철학과 자연의 거울”과 “우연, 아이러니, 그리고 연대”라는 저서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2000년 즈음해서 영어권 서점에 가보면 철학 코너에 잘 보이는 자리에 진열되어 있을 정도로 영어권에서도 추천받는 저서를 쓴 사람입니다. 맥도웰과 같은 피츠버그 학파와 마크 존슨과 같은 체험주의 학파도 로티를 참조했다는 언급을 저서에서 할 정도로 구명적인 사상(rescue)을 하는 철학자들이 잘 참고하는 책들이네요.
이 철학자의 사상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독특한 특징으로 누구나 느끼는 것은 기존 사상에 대한 철저한 반론과 이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는데 있습니다. 핵심은 홀로 된 존재로서의 인생을 구명한다는 동기 아래, 사회에서 특정한 담론이 지배적이 되거나, 지배적이지는 않더라도 은유와 추론의 맥락에서 혼자서 죽어가야 되는 존재를 구명한다는 것인데요. 예를 들면 홀로 되어가는 소년이 심리학계에 편입되는 것이 허락되듯이, 이러한 존재가 살아진 인생에 의해 심리학(프로이트나 포스트모더니스트 포함)적 성향이 되지만, 사귀면 뭔가 불길한 배경으로 이겨내왔거나, “왠지 기분나쁜 사람”처럼 평가받을때, 이에 대한 대안 문화(counter culture)를 촉구하는 것이 핵심 사상이네요.
서구에서도 반론을 로티에게 하지 않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닌데, 한국에서는 독특하게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반감이 컸던 사회라, 로티가 제시하는 철저한 반론에 대해 극단적인 쇼비니즘이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상에 대해 옹호할 수 있는 인상을 준다고 해석하기도 했다는 것이네요. 저는 이러한 의견이 영어권이나 전세계적으로 이해되는 “무조건적인 신뢰”를 요구하는 로티의 의견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적으로 로티가 찬성하는 이론 중에 “평소에 도덕적이라고 평가받는 분들이 왜 사회에 해악을 주는가”와 같은 논제의 한 이해 타래로 이해하면, “철학과 자연의 거울” “우연, 아이러니, 그리고 연대”에서 말하는 바가 이해가 될 것 같애요. 심지어 칸트의 정언명령도 정언명법과 구별되어 개인에 대한 이해를 달리하게 할때, 세상 모든 것은 추론적이고 은유적이라 있게 되는 배척의 논리가 있게 되어 존재를 해할때의 대안 문화 논의인데요. 영어권에서 로티 저서가 철학코너에 진열되어 있는 것과 같은 사회적인 여유로움의 상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독특하게 로티를 따르면 분석철학이지만 환원주의도 아니고 비환원주의도 아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구요. 니체에 대해서도 로티는 옹호하네요. 이는 순수철학보다는 한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갈때 타인의 인정이 없으면 사후에서야 인정받는 것처럼 되기도 하는 것이고, 특정한 사건에 휘말리는 등의 체험에 의해 건강성을 최고의 가치로 이룩해야 하는 삶에 대한 양해를 하자는 것이라, 위에 말씀드린 심리학계에 편입되는 것을 요청하는 것처럼 포스트모더니즘도 분석철학이 긍정할 수 있음을 제안하는 것이네요. 이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도 여러 수용이 가능한데, 이를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상으로 규정하면 로티가 왜 철저하게 기존의 구명적 사상도 비판하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특별히 자문화중심주의에 대해 로티가 비판했는데도 (문화적으로 옥죄어 오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 한국에서는 2005년즈음에 퍼트려진 에세이들을 보면 로티가 미국 문화를 옹호해서 자문화중심주의를 비판했다고도 잘못 알려져 있구요. 이는 예일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미국에 소개한데 대한 확장 논의도 되네요. 사실 로티는 분석철학이든, 포스트모더니즘이든 어떤 철학 이론이든 실용성이 강조되는 특정한 순간이 있으며 이는 우연적으로 덮쳐오는 무엇이기에 자아에 대한 확립도 그러하다는 것을 지지하는데요. 독특하게도 존재가 중심을 못잡고 갈팡질팡하는 것에 대한 도달처를 확보해주기 위해 존 로크처럼 사회적 관용을 제시한 학자도 비판하지만 이는 그의 방법론 비판이기보다, 행동주의적 연합주의가 논구될때 존재를 내치게 되는 결과가 됨을 비판하구요. 칸트도 로티가 비판한다고 압니다. 이는 철학이 실용적으로 변용이 되는 은어적인 상황들, 존재의 위기에 대해 살아진 그대로를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을 선택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떤 입장에도 소속이 안되는 것이 비판이론으로 보면 망나니 같지만, 어느 분야에서나 존재하는 거부감을 지지하는 이론을 비판한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상식이 편견으로 보는 포스트모더니즘도 대안이 된다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로티가 니체에 대해 긍정했다는 것도 망나니의 권력의지이기보다 제가 전에 쓴 글처럼 건강을 지키며 대립할때는 적극 실천하고 연대도 하는 아이러니스트가 된다는 것이네요. 아이러니라는 것도 사실 원칙만 보면 심리학계에 편입되는게 도덕적 배반같지만, 그 방법은 다양하기도 하네요. 정신의학이 되는 것도 심리학계 편입시에는 거부감을 안갖는게 진실이구요. 스키너를 옹호하더라도 정도를 지킨다는 능력이 있음이 확인되면 대안 문화로 보호해준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아이러니와 연대라는게 이런 의미입니다.
1990년대까지의 한국 사회처럼 엄숙주의가 유행하던 사회에서는 영어권의 이러한 분위기가 자문화중심주의처럼 보이겠지만, 연쇄살인범에 대해 유망한 이론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맥락의 논의가 필요하듯이, 로티도 존재 구명의 한 방법이 반드시 엄숙주의에 대한 옹호 강요가 아니라는데 관점이 확장된 경우입니다.
이러한 존재가 배우는 사상이 구명의 관점에서 데리다의 해체나 라캉의 정신분석이 된다는 것이 너무 과도하다면 리오타르나 들뢰즈-베르그송도 가능한게 로티가 주목한 것이구요. 그럼에도 데리다나 라캉을 배우시는 분들에게 무조건적인 적개심을 갖지 않는 존재라면 포스트모더니즘도 분석철학계에서 인정을 하는게 된다는 것이죠. 프로이트의 경우에는 한국이나 일본 정신의학계에서 받아들이듯이, 저서로 말씀드리자면 “프로이트의 의자”와 같은 해석도 되는 것이라, 엄숙주의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로티의 관점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영어권에 많네요.
또 푸코처럼 자기배려와 같은 사상도 가능한게 사실이고 그 입론의도가 구명받음과 아이러니가 되더라도 구명 대상이 되는 존재가 이를 긍정하는 것은 비도덕이지 않다는 입장을 이론적으로 지지하려는 것입니다.
즉 편견에 의해 형성된 인식은 존재에게 해가 되니, 이를 각자의 관점에서 실용적으로 받아들이되, 완고한 도덕주의는 옳지 않고, 특히나 칸트처럼 절대적인 도덕이론을 만든 경우에도 은유나 추론적으로 오용되기도 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철학과 자연의 거울”에서 논구하는 이유네요. 대학에서 저술과 출판을 지원한 저서입니다.
이를 따르면, 분석철학을 했어도 니체의 철학을 긍정하는 길이 열리고, 저는 이를 토대로 니체를 건강성 지속의 텍스트로 읽는 글을 썼군요.
이런 생각을 기조로 갖는데 매형 눈치보느라 로티 저서를 구해둔 것을 읽다가 보류했습니다. 로티는 형이상학(meta + physics)와 물리주의(physicalism)의 용어법부터 정리하고 들어가는데, 구명적이네요.




